"더 이상 조직과 개인의 비교와 구별이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의 평생직장과 직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직업 job'과 '기능 function'으로 정의되는 다양한 일들이 생긴다. 스스로 자기 조직화 self-organization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곧 기업가이고, 우리 모두에게 기업가 정신이 필요할 때이다." - 얼러트니스, 흰빛(2019)
위 글은 2019년 '얼러트니스' 책날개에 썼던 마지막 글이다. 글을 마무리할 때 머릿속에 떠오른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고 예견했던 글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만 해도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이었고,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기 1년 전이었다. 그런데, 이 예측이 눈앞에 현실로 마주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No more Jobs.
새해 아침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No more Jobs!'라는 날벼락 같은 소리가 들려온 것은 분명 꿈속이었다.
꿈속 세계는 대학 강의실이었다.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교수는 나를 향해 'No more Jobs! No Jobs!, Yes Job!'을 외쳤다.
생생한 꿈은 현실 세계로 빠져나와 삶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는 꿈을 자주 꾸는 나로서는 이런 일들이 새삼 신기하지는 않다.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이런 소리가 꿈으로부터 들려온다는 것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우리 사회, 일자리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꿈을 꾼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오늘, 갑자기 책 상 앞에 앉아 4년 전에 쓴 책을 나도 모르게 펼쳤다. 책날개에 담긴 문구는 바로, 기능! 그래 funtion만이 남을 것이다. funtion, 기능적 인간이라...
직업의 종말인가? vs 전문가 시대의 종말인가?
"교수"와 "건축가", "예술가"라는 말이 같은 맥락에서 사용할 수 없어. 문맥상 다른 말이야. 교수라는 것은 하나의 직위이고 건축가, 예술가는 직업을 의미해.
협업 커뮤니티 안에 노출된 직업군의 나열이 서로 결이 다르다며, 친구는 사업계획서 상에서 '교수'라는 문구 수정을 주장했다. 나는 어차피 다양한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해 모이고 협업할 텐데, 그게 뭣이 중요하냐는 식으로 대응했다. 한참을 친구와 설전을 벌이다 우리는 가까운 문학박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문맥상 어색한 부분이 있는지 대해서 말이다. 처음에 문학박사는 특별히 오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의 주장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면서 '둘이 사이좋게 지내라'라고 별 일 아닌 일들에 열렬히 토론하는 우리들을 향해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친구와 설전이 있던 아침에 꾼 꿈이 바로 No more Jobs! 이었다. 아마도 이 꿈 때문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는 줄도 모르겠다. 나의 예민함에서 오류를 직감적으로 느낀 친구도 어쩌면 사소하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에 자신의 경험까지 덧대어 더욱 주장했는 줄도 모른다. 이 일은 하나의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의 주장도 나의 생각도 모두 협업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맥락과 기준점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기능의 시대, 일 중심? vs 인간 중심?
한 주를 돌이켜보니 디자인과 연관된 사람들과 제일 많이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있었다. 그 일들은 모두 내가 만들려고 하는 일들에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었다. 50대를 앞둔 중견 여성 디자이너, 전문가 프리랜서 마켓으로부터 일을 요청받는 30대 청년 디자이너, 디자이너 그룹을 운영하는 중견 기업의 CEO, 육아를 하면서 디자인 일을 하는 40대 주부 디자이너까지.
종종 사람들에게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고, 한 마디로 어떤 일을 하는지, 직업에 대한 정의를 묻곤 한다. 재미있는 점은 모두 동일한 디자이너라는 직업인데, 직업을 대하는 생각과 자세가 각기 다르다. 그리고 어떻게 정의를 내리느냐에 따라 똑같은 일도 풀어가는 방식이 제각각 다르다.
또 한편으로는 최근 함께 일을 도모하고 있는 예술가도, 건축가도, 작가도, 정책가도, 공학자도, '디자인'이라는 기능적 콘셉트를 자신의 일과 연관되어 말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었다.
협업의 시대!
만약, 당신이 협업 커뮤니티를 구성한다면 어떤 사람과 일을 시작하겠는가?
일 잘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나아가서 직업과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당신이 일 중심으로 '기능적' 사고 안에 머무는 순간, 당신은 기술을 가진 기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인간 중심으로 '본질적' 사고에서 시작한다면, 당신에게는 직업이 아닌 매우 다양한 일들이 몰려오는 기회의 풍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가진 기능적 사고 기술이, 그리고 그것을 알고 모른다는 정보 요소의 기준으로 마치 전문성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첨단 기술에 의해 그 업종의 전문가 시대는 빠르게 종말 할 것이다. 전문가는 자기가 경험한 영역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 영역으로부터 알고 있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고 있지 못함을 채워 가는 겸손한 사람을 말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협업은 시작한다.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