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라는 단어는 21세기 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삶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다. 반면, 나에게 '거리 두기'라는 말은 20세기 말 어느 대학가 연극 공연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말 중 하나였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20세기 초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자신의 연극 연출론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단어다. 희극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위해 제시한 개념으로 관객과 작품과의 거리를 둬서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극 중에 익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낯설게 하거나 숏과 숏 사이에 자막을 삽입하여 관객이 극에 몰입하기 보다 거리를 두도록 한다. 즉, 당신은 지금 연극을 보고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허구라는 것을 관객에게 인식시켜 극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연극에서 거리 두기는 일종의 자기 객관화, 자기 통찰과 연관되어 있다. 반면, 우리 일상에 어느덧 자리 잡은 '거리 두기'는 타자와의 거리 두기를 말한다.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 여부는 우리의 일상 생활이 여전히 코로나19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시켜 주며, 자기 자신을 타인에 의해 검열하는 매개체가 된다.
브레히트의 거리 두기나 코로나19의 거리 두기는 '불편한 느낌'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동일한 맥락이 있지만, 코로나19의 거리 두기는 정부가 규정해 놓은 틀안에서의 개인의 자율과 자유를 제약하는 표준화된 장치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은 타자와의 거리 두기보다 '자신과의 거리 두기'일 줄도 모른다. 일상 속에서 자신과의 거리 두기가 실패하면, 타자와의 거리 두기도 실패하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의 삶으로부터 적정한 거리를 두지 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늪에 빠지게 된다. 그 늪이 긍정의 호수라면 적어도 달콤하겠지만, 만약 부정의 바다라면 그곳에서 자신을 꺼내오기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긍정의 호수에 있는 당신도, 부정의 바다에 있는 당신도 어쨌든 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혼자라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해야 자신의 삶을 자기라는 '늪'과 타인이라는 '세균'으로부터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자연은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심리학에서 역경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회복탄력성 Resilience라고 말한다.
실패나 부정적 상황을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적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을 뜻한다.
당신의 지금 삶이 타인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 있다면, 예를 들어 가족, 학교, 직장 등 일종의 공동체라는 커뮤니티 환경 안에 있다면, 그리고 그곳이 적정한 존중과 대우를 해 주고 있다면, 당신의 회복탄력성은 타인에 의해 당신이 홀로 있을 때보다 높을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 경우는 온전히 당신 자신의 진정한 회복탄력성을 체크해 볼 수는 없다.
자신을 둘러싼 어떠한 울타리도 없을 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실패와 부정 기운으로부터 당신은 얼마 만에 회복할 수 있을까?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만약, 자신만의 작은 성공과 무한 긍정의 회복 주기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바로 '혼자라는 자신의 늪'과 '타인이라는 세균' 속에 자신의 삶을 지키는 유일한 기준이 될 것이다.
PINK MARIE 52
자기다움, 자기다운 일, 자기다운 삶을 발견하는 이야기
🎁 1년 52주, 주 1회 씁니다.
🎁 1년 12달, 매월 2회 띄웁니다.